"그들은 사람을 물속에 던져버릴 수도 있어요. 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건 위험해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1위를 차지한 씨스피라시는 범죄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알리 타브리지 감독이 제작한 89분짜리 다큐멘터리는 바다와 연관된 부패를 추적하는 탐사다큐멘터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씨스피라시는 일본의 포경재개와 상업적인 어업, 샥스핀을 얻기 위한 상어의 학살, 오염된 양식장에 이르는 과정에서 현재 인류가 바다를 대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사실 씨스피라시의 내용중 상당부분은 매우 정확한 지적입니다. 거북이 코에 꽂힌 빨대나 고래의 뱃속에 가득찬 비닐봉투 등 플라스틱으로 인한 문제는 '일반 소비자'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규제로 이어졌지만 실제로 해양플라스틱의 대부분은 어업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어업을 규제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 대한 규제만 강화한다며 강도높은 비판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어업에 대한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늘려야 할 문제이지, 소비자들이 플라스틱을 마음껏 써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또한 알리 타브리지 감독은 바다에서 남획이 이뤄지고 있고, 무분별한 어획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바다가 파괴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기도 합니다.
이같은 주장들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감독이 편파적인 태도로 영상을 제작하면서 스스로의 신뢰도를 무너뜨렸다는 생각합니다. 사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씨스피라시의 감독이 행동주의 해양환경단체인 시셰퍼드(SSCS, 시셰퍼드컨베이션소사이어티)에 대해 마치 그들이 해양환경을 보호할 유일한 구원자로 묘사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반면 지속가능어업인증표준을 제정하는 MSC(해양관리협의회)나 돌고래 등을 보호하는 IMMP(국제해양포유류프로젝트) 등 다른 환경단체에는 아주 냉정한 태도를 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MSC나 IMMP 등 해양환경단체가 기업과의 유착관계를 형성해 바다를 파괴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처럼 비난합니다.
더불어 수산물에 대한 태도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바다를 보호하는 방법이 수산물의 소비자체를 중단하거나 줄이는 것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얘기합니다. 이같은 내용은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바로 비건으로 구성된 동물보호단체들이 하던 얘기와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하는 점은 과연 시셰퍼드의 주장이 아닌 그 '방식'이 옳은지에 대한 것입니다. 시셰퍼드의 설립자는 그린피스의 '비폭력'에 반감을 가져 그린피스를 떠난 폴 왓슨입니다. 폴왓슨은 그린피스를 떠나 시셰퍼드를 설립, 해양생물 보호를 위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섭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너무 과격합니다. 시셰퍼드의 선박이 포경선을 들이받아 침몰시킨 사례도 있을 정도니까요. 이 때문일까요? '공격적 비폭력'이라는 아이러니한 표현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실 전 시셰퍼드처럼 '행동'하는 환경단체나 동물보호단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반감이 조금 큰 편입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전에 업무차 동물복지인증제도와 관련한 공청회를 듣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참석한 모 동물보호단체의 대표가 축산농가의 면전에서 "축산업을 하는 사람들은 인성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축산농가들은 굉장히 불쾌해했고, 공청회장을 나온 축산농가가 한마디를 뱉어냈습니다. "지들 마음대로 하라고 해. 어차피 인증안받으면 그만이니까."
해당 동물보호단체는 농장동물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나섰겠지만 그런 과격한 행동은 동물의 복지를 개선하지 못한다는 게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씨스피라시를 보고나서도 뭔가 찝찝함이 남았습니다. 감독은 하고 싶은 말을 실컷했지만, 일부 극단적인 환경보호론자들을 제외하고는 공감을 얻기 힘들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더불어 왜곡논란도 여전합니다. IMMP의 부국장인 마크 팔머는 씨스피라시의 감독이 악마의 편집처럼 과잉 편집했다며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IMMP의 인증이 돌고래를 한마리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증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 다른 말들은 모두 제외하고 "고래가 얼마나 혼획됐는지 알길이 없다"는 답변만 영상에 담겼습니다. 사실 굉장히 무책임한 답변처럼 보이는데, 실제 마크 팔머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인증제도를 통해 고래의 도살을 95% 가량 막을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MSC에 대한 내용도 왜곡논란이 있습니다. 알리 타브리지 감독은 전문가 등과의 인터뷰에서 지속가능한 수산물을 먹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것은 "판다보다 북극곰을 쏘는 것이 더 지속가능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국 런던에 위치한 MSC본부를 방문했지만 MSC가 '지속가능한 수산물'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는 MSC 측의 설명과는 또 다릅니다. (전 영국에 위치한 MSC본부를 방문한적이 있습니다.) MSC는 세계 각국에 사무소를 둔 규모가 큰 해양환경단체입니다. 하지만 알리 타브리지 감독은 인터뷰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지 않은 채 무작정 인터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환경단체든 기업이든 정부든 각자가 담당하는 영역이 있는게 상식인데, 이를 알리지 않는다면 대체 해당 단체에서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왜 왔는지도 모르는데, 누가 나가서 응대를 해야할까요? 그러고도 "지속가능한 수산물에 대해서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왜곡 논란이 만들어지는 것은 감독 자신에게도 좋을 것이 전혀없습니다. 해양생물보호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인만큼 혼란을 주는 것은 해양보호에 도움이되지 않습니다. 또한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다른 단체를 왜곡을 통해 매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 "수산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에게 수산물은 식량자원입니다. 바다를 보호하는 방안 대신 수산물을 먹지 말자고 하는 주장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축산물 섭취를 하지 말자는 극단적인 동물보호단체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이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육류를 판매하는 식당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고기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팻말을 들고 다니는 시위를 한 사람들에게 공감할까요? 사실 보통 그런 경우는 비난 내지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쌀은 아프지 않은 거냐" 내지는 "그냥 굶어죽자고 하지 그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죠.
MSC처럼, 수산물을 먹되 환경이나 사회에 해롭지 않거나 덜 해로운 수산물을 먹자는 주장이 오히려 합리적일 겁니다. 극단적인 주장들은 극단적인 반감만을 일으키게 될 뿐 해양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전 그래도 씨스피라시가 한번 볼만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감독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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