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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바다

통계로 보는 수산업 (7) 수산물은 전부 수협을 통해 팔아야할까?

by IsKra3181 2022. 9. 7.

부산공동어시장에 쌓여있는 수산물입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엄밀히 말하면 수산물 위판장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산물 산지 시장입니다.

수산업계에서는 해묵은 논쟁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수산물 강제상장제'라고도 부르는 의무위판제도입니다.

통상적으로 지역의 이름을 딴 이른바 '지구별 수협'에서는 대부분 '위판장'이라고 하는 수산물 양륙·경매장소가 있습니다. 위탁판매를 하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른 곳이죠. 수협에서 조합원이 생산한 수산물을 위탁판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업입니다. 보통 낙찰금액의 4~5% 정도를 수수료로 가져가기때문에 일선 수협의 수익에도 큰 기여를 하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이 위판사업을 두고서는 말이 참 많습니다. 일부 수협 조합장들은 수산자원관리와  정확한 수산물 생산통계 집계를 위해 위판을 의무화해야한다고 주장하고, 현장에 있는 어업인들은 수협이 어업인이 생산한 모든 수산물을 처리해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위판을 의무화하자는 것은 범법자를 양산하자는 얘기 밖에 안된다고 지적합니다.

위판의무화 논란에서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은 수산물 의무상장제도의 역사일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1911년 조선어업령에서 처음으로 의무상장제도를 도입했습니다. 1914년에는 조선총독부령 제109호 조선어업보호취체 규칙에서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는 어획물을 양륙·매매·교환할 수 없다'는 규정으로 제도화가 됐습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는 1953년 제정된 수산업법에 어획물의 판매장소를 지정하는 근거를 마련했으며 1963년 제정된 수산자원보호령에 따라 의무상장제도가 시행됐습니다. 의무상장제도는 수산물의 유통에서 순기능도 많이 했습니다. 불법어획물의 유통을 차단해 수산자원을 보호할 수 있었고 한번에 많이 생산되는 수산물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당시 경영이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던 수협에 위판수수료 수익을 안정적으로 제공, 수협이 협동조합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정부는 1994년에 의무상장제를 폐지, '임의상장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힙니다. 임의상장제는 수산물의 판매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판매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 계획에 따라 1994년 12월부터 1992년 2월까지 10개 품목을 대상으로 실시된 임의상장제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임의상장품목이 늘었습니다. 그 결과 1997년 9월에는 모든 수산물에서 의무상장제도가 폐지됐습니다. 이후 정부의 행정규제 완화 시책에 따라 필요시 의무상장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는 근거규정까지 삭제되면서 의무상장제도는 역사속으로 넘어갔습니다.

여기서는 통계를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수산물의 판매량과 금액을 집계하는데 있어 수협을 통한 계통판매와 비계통판매를 나눠서 집계하고 있습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는 모든 수산물이 수협을 통해서만 거래해야했습니다. 하지만 통계를 살펴보면 수협을 통하지 않은 거래가 상당히 많습니다. 1990년 연근해어업 생산량 147만1810톤 중 계통판매량은 126만2729톤으로 위판이 이뤄지는 비율은 85.79%였습니다. 1991년의 계통판매비율은 83.69%, 1992년 84.78%, 1993년 81.04%, 1994년 83.34% 입니다. 

생산금액으로 봐도 수협을 통한 판매비중은 1990년 80.68%, 1991년 81.03%, 1992년 80.69%, 1993년 74.11%, 1994년 77.46%에 그치고 있습니다.

법령에 따라 수협을 통해 판매하지 않는 것은 범법행위인데 왜 연간 연근해어업 생산량의 15~20%에 달하는 수산물이 수협을 통해 판매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사실 이 문제가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수협에서는 전체 조합장이 모이는 총회에서 건의서를 채택할 정도로 수산물 의무상장제 도입에 진심입니다. 하지만 정작 수협은 조합원이 생산하는 모든 수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역량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수협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이지 않은 수산물을 구매하려는 중도매인이 없는 것이죠.

수협을 통해서만 팔게 해달라는 건의서가 공허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정부가 수협의 건의를 받아들여 의무상장제를 시행한다면 수많은 어업인이 범법자가 돼야 합니다. 이는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지난해 국내 연근해어업과 양식어업, 내수면어업 생산금액은 7조9582억원이었고 이중 수협을 통해 판매되지 않은 비계통 판매금액은 3조127억원이었습니다. 일선 수협의 위판수수료를 5%로 잡았을때 지금에 비해 추가로 발생하는 유통비용은 1506억원입니다. 이는 위판수수료만 그 정도의 금액이며 경매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추가되는 물류비 등을 모두 감안하면 더욱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 결국 소비자가 그 비용을 분담해야합니다. 남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 글에 사용된 통계는 모두 통계청의 자료이며 제가 가공한 자료입니다. 필요하신 분은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수산물 계통판매량.xlsx
0.03MB
비계통판매금액.xlsx
0.01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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