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어떤 소재로 만들어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박들은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금속소재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맞습니다. 화물선이나 대형여객선 등 대형선박들은 대부분 금속소재로 만들어져있습니다. 조선소를 떠올릴때 용접공을 먼저 떠올리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하지만 어선은 조금 다릅니다. 바로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든 선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 우리나라의 어선은 대부분 목선이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선질개량사업'을 통해 목선이 줄어들고 FRP어선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통계를 보면 1992년에 전체 어선 7만6825척 중 FRP소재로 만들어진 어선은 1만1185척으로 전체 어선척수의 15.44%만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FRP어선은 빠르게 늘어 1999년에는 8만7502척의 어선 중 4만5492척(51.99%)의 어선이 FRP로 만들어져 처음으로 FRP어선의 비율이 50%를 넘었습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해 2020년에는 6만4987척의 어선 중 6만2849척의 어선이 FRP소재로 만들어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6.71%에 달합니다.
FRP 소재의 장점은 건조가 용이하고 유지관리도 쉽습니다. 또한 건조비가 저렴하지만 경도는 철선에 못지 않은 수준을 자랑합니다. 반면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을때는 취약합니다. FRP어선은 플라스틱 수지와 유리섬유를 교차로 쌓아올려서(적층) 만듭니다. 경도에는 문제가 없지만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수지가 녹아내리면서 대형인명사고로 번지게 됩니다. 물론 어선 내부에 방염설계를 하기에 최근에는 비교적 오랜 시간을 견디지만 FRP소재의 특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지만, 사실 경제성 하나는 최고일 겁니다. 어선 100척 중 96척 이상이 FRP로 만들어지는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죠. 문제는 FRP어선 역시 수명이 있으며 FRP 소재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라는 점입니다. 어선은 보통 20년을 수명으로 봅니다. 선령 21년부터는 노후어선으로 분류되고 이때부터는 어선을 폐선하고 새로운 어선을 건조하게 됩니다. 물론 관리정도에 따라 수명이 길어질 수는 있지만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국내 노후어선은 매년 늘고 있습니다. 1992년 6884척에 불과했던 선령 21년 이상의 노후어선은 2020년 1만9841척으로 늘었습니다. FRP어선의 비율이 약 97% 수준이었으니 단순 계산시 1만9245척 가량의 어선이 FRP소재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는 1만9245척에 달하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FRP어선이 적정하게 처리될까요? 금속으로 만든 선박은 폐선을 할 경우 고철값을 받게 됩니다. 반면 FRP어선은 선박의 규모에 따라 수천만원에 달하는 처리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비용이 부담스럽다보니 전국 연안 곳곳에서는 FRP어선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방치된 FRP어선이 파도에 부서지면서 미세플라스틱이 되기도 하죠.
문제는 처리비용 뿐만이 아닙니다. FRP어선은 경도가 높기에 폐선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소각처리를 하려고 해도 소각업체에서 거부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골칫덩이가 되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FRP어선이 적정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야하는데, 정책이 마련돼 시행되는 전 과정은 우리 사회 구성원이 함께 짊어져야 하는 부담입니다.
지금부터라도 FRP어선들을 어떻게 폐선처리할지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포스팅에 사용된 통계를 별도로 첨부합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자료를 제가 가공한 것이고 필요시 언제든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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