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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의 능력주의 리뷰

by IsKra3181 2022. 9. 10.

최근 능력주의와 관련한 책을 세권 읽었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시작으로 박권일 씨의 한국의 능력주의, 김동춘 교수의 시험능력주의 등 3권입니다. 세권을 읽고 저도 반성을 했습니다. 그간 저도 '능력주의의 폭정'에 길들여져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죠. 

이 책의 부제는 참 재밌습니다.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한국의 능력주의는 '그건 참아도 이건 못참지!'라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5부에 걸쳐 한국의 능력주의가 어떻게 형성됐고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능력주의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지를 살핍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뿌리깊은 능력주의에 대한 신화가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한국은 자본주의-능력주의 체제의 최첨단에 선 사회이다.' 입니다. 그만큼 능력주의에 따른 폐단도 심각하다고 볼 수 있죠. 박권일 씨는 능력주의는 오랫동안 한국을 지배해온 이데올로기였으며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낡은 유산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가장 앞서 나간 국가들이 공히 겪고 있는 문제라고도 지적합니다.

박권일 씨는 한국의 능력주의를 논하면서 한국사회의 엘리트가 괴물이 됐다고 지적합니다. 고시합격자들의 글이 실리는 '고시계'라는 잡지를 보면 고시합격자들은 목표의 달성이 순전히 개인의 힘 이룬 것이기에 다른 직업보다 더 가치가 크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시준비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볼때 자기혼자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 고시는 가족 전체의 역량이 투입되는 '가족 전쟁'이며 아무리 시험공부에 재능이 있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하거나,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가족을 부양할 방도가 없는 사람의 경우 시험의 허들이 그에 비례해 높아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5급 공무원 시험은 소득분위 상층에 속하는 상대적 고소득자의 응시율이 소득분위 하층의 두배에 이르고, 역대 사법시험에서도 고졸 이하 학력의 합격자는 예외적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사법부를 비롯한 고시합격자 집단이 체제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지만 사실 민주적 가치에 대한 불신이 가장 강한 '민주주의 인식 취약집단'이라고 합니다. 그 예로 '개·돼지 국장'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교육부 고위 관료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고시 합격자들은 학교 이외에 이질적 집단이나 조직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시준비에 돌입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을 우열화 하는 관점과 선민의식을 자연스레 내면화하게 된다고 합니다. 박권일 씨는 "과소한 민주주의 교육이 과도한 능력주의 신화와 결합할 때 어떤 '괴물'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거대한 사회실험이었다"고 일갈합니다.

저자는 한국의 능력주의가 갖는 특징에 대해서도 지적합니다. 그에 따르면 한국 능력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시험을 통한 지대추구의 정당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 입시나 고시 등 한국의 이른바 '결정적 시험'은 생산적 기여가 없이도 합격했다는 사실 자체로 불합격자가 따라잡을 수 없는 보상이 주어지는 강력한 지대효과가 창출됩니다. 또다른 특징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특정 집단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이는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것과 같습니다. 샌델은 능력을 갖춘 엘리트의 오만이 일의 존엄을 무너뜨렸다고 지적합니다. 박권일 씨는 우리나라에서 능력주의가 발현되는 방식이 시험을 통과한 소수에게는 특권을 집중시키는 반면 저능력자나 무능력자를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극단적 형태로 발현된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의 능력주의는 다른 사회에 비해 육체노동자에 대한 노골적인 비하가 일상화돼 있는데 이같은 계급차별은 종족성과 결합, '끔찍한 혼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박권일 씨는 능력주의의 대안 곧 불평등의 대안이라고 지적합니다. 불공정이 아닌 불평등 자체를 새삼 환기해 시민적 관심사로 돌려놔야 한다는 것입니다. 격차와 불평등을 동력삼아 모두가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행복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일갈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능력주의의 인상깊은 한줄 요약은 에필로그 부분에 있는 문장이었습니다.

"비유컨대 능력주의는 '화석연료'다. 한때 그것은 성장의 필수 연료로 각광받았지만, 오늘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족쇄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느낌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반성한 대목은, 그간 저 역시 능력주의의 열렬한 신도였다는 사실입니다.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사실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인데 그 '능력'이라는 것도 결국 개인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스포츠스타 중 한 사람인 마이클 조던이 19세기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요? 글로벌 스타인 BTS를 조선시대의 신분으로 따지면 '천민'인 광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능력'을 갖췄다는 것도 '운'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태도가 더욱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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