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출판사의 힘으로 책을 한권 샀습니다. 전 창비사에 대한 동경 내지 선호가 있습니다. 계간으로 발간되는 창작과 비평 때문입니다. 또한 '차별'이나 '인권'의 문제에 대해선 다른 영역에 비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 덕에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YES24에서 책을 하나 주문했습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출판사에 대한 신뢰도+제목에 대한 호기심. 이게 이 책을 사게 된 이유입니다. 책의 저자인 김지혜 씨는 자신이 무심코 썼던 '결정장애'라는 말로 책의 서문을 시작합니다. 결정장애라는 표현의 '장애'가 '부족함' 내지 '열등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말이죠.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서는 40여분간 가야하는 버스를 타야했는데, 그 버스에 다운증후군인 아이들이 승차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버스에서 소리를 지르며 떠들고 승객들이 작은 불편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버스의 운전기사님이 그 아이들을 혼을 내셨습니다. 다운증후군이 외모만으로 질환의 유무를 알수 있는터라 그냥 장애가 있는 아이들인데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님께서는 "너희가 몸이 조금 불편한거 말고 뭐가 부족하냐?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때는 조심하면서 가야지"라고 말씀하셨죠. 그때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전 그 아이들이 다운증후군이라는 이유로 그저 '동정'을 하고 있었던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은 그간 제가 잊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 깨우쳐줄것이라는 작은 기대가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수긍이 가는 점도 있었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우선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이나 일상생활에 녹아있는 차별적인 언어들. 그리고 그 언어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이 갔습니다.
하지만 김지혜 씨는 인문과학 내지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자연과학적인 사실조차 부정하려들거나,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통계의 행간을 읽지 않은채 글을 쓰는것, 현행 제도상 법적인 권리와 의무관계를 배제한채 '차별'이라는 관점으로 모든 사안을 접근하려드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의 수학능력 문제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신체적인 차이 뿐만 아니라 지적인 역량에서도 격차가 상당합니다. 이는 어느 한쪽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공간지각 등에 있어서는 남성이 뛰어난 반면 언어나 공감능력 등에서는 여성이 뛰어납니다. 이는 실제로 EBS에서 방송했던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런데 작가는 단순히 여성이 수학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에 의한 '차별'로 치환시켜버립니다. 남성과 여성의 뇌구조가 다른 것은 자연과학적인 사실인데 이를 인문과학 내지 사회과학자의 시각으로 부정하려 드는 것이죠.
두번째는 통계의 행간을 읽지 않는 것입니다. 저도 통계에 관한 글을 쓰고 있지만, 통계는 여러 통계의 교차검증 등을 통해 유효성이나 그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저도 통계학을 공부하진 않았기에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하나의 통계를 일방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 문제에서도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적은 급여를 받으며 이는 OECD국가중 최하위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통계의 이용은 굉장히 일방적입니다. 일을 하는 직군이나 근무시간, 노동강도 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 편의점에서 1일 8시간을 일하는 사람과 공사장에서 8시간동안 벽돌을 나르는 사람이 같은 노동강도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스포츠스타 리오넬 메시와 세계 최정상급의 여성 축구선수가 같은 연봉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리오넬 메시는 수익이 많이나는 리그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는 반면 여성 축구는 인기가 없습니다. 구단도,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도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같은 연봉을 받는것이 합리적일까요?
세번째는 현행 제도상의 문제도 고려하지 않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공무원과 무기직 공무원의 호칭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6급 이하의 공무원을 '주무관'으로 칭하고 5급 사무관 이상 부터는 직급을 따로 부릅니다. 하지만 무기직 내지 공무직으로 불리는 준공무원(?)은 형식상 국가나 지자체의 소속이지만 공무원은 아닙니다.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이나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그 의무와 권리가 명확히 규정돼있습니다. 공무원은 최저임금법의 적용도 받지 않고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은 심각한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무기직 내지 공무직으로 불리는 준공무원(?)은 최저임금법을 비롯한 근로관계법령을 모두 적용받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에 준하는 의무가 부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기직 내지 공무직과 공무원이 함께 '주무관'으로 불리는 것은 정책 고객인 시민들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전 적어도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이런 차이들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이를 차별이라고 논하는 것은 또다른 의미에서의 차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학력에 대한 것입니다.
전 학벌없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10대에는 누구나 노는게 더 즐겁고 좋아. 놀고싶은걸 참고 견뎌가며 공부한 사람들이 더 나은 성적으로 더 좋은 대학을 가는 거야. 그런데 왜 그런 노력이 무시당해야돼?" 아내는 모두가 하기 싫은 공부를 참아가면서 노력한 결과가 대학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 이말에 오히려 공감이 갔습니다. 저나 아내나 부유한 집에서 사교육으로 만든 성적은 아니니까요.
물론 부모의 재력에 따라 학력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적인 내용은 많긴한데, 인권문제에 관심이 있으시거나 교양서적으로 가볍게 읽을 책을 찾으신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사용했던 표현들인데,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책이랄까요? 책도 얇은 편이고 내용도 술술 읽힙니다. 넉넉잡고 3시간이면 다 읽을 내용인만큼 한번 읽어보시는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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