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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공정하다는 착각 리뷰

by IsKra3181 2022. 9. 9.

최근 수년간 대한민국을 시끌시끌하게 만든 화두는 바로 '공정'입니다. 그 공정의 저변에는 '능력에 맞는 대가'를 염두에 둔 말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정이 화두가 된 대표적인 사례는 인천국제공항, 이른바 '인국공 사태'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첫 사례가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공항공사 노동조합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는 역차별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도 공사에 입사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시험을 치른 이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비난했습니다.
이런 세태에서 세계적 석학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함의가 있어보이기에 이 책을 골랐습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영문 제목은 '능력주의의 폭정(Tyranny of Merit)' 입니다. 번역을 한 사람의 선택 같은데, 사실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은 굉장히 강렬하고 흥미로운 제목이지만 제목만 놓고 봤을때 오해의 여지가 있어보이기도 합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이 이 책이 능력주의의 정착을 위한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대학입시와 능력주의'라는 서론을 시작으로 7개 장, 그리고 결론을 담고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은 저서에서는 책의 한국어 제목처럼 공정에 대한 담론이 주류는 아닙니다. 그래서 '공정'에 방점을 찍고 읽다보면 헷갈리는 지점이 생기게 됩니다. 영문의 제목처럼 능력주의가 확산되는 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 주 내용이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정'에 대한 인식을 짚어나갑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에서 자유주의 담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능력주의가 가지고 있는 맹점을 비판합니다.
마이클 샌델은 불평등의 문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능력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은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 갈 수 있다는 사회적 계층 상승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상승을 위해 필요한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부터 불평등이 발생합니다. 아이비리그 대학생 가운데 소득분위가 하위 5분위 출신자는 4%로도 되지 않으며 하버드와 스탠포드대의 3분의 2는 소득 상위 5분위 가정출신이라고 지적합니다. 마이클 샌델은 이를 바탕으로 노력과 재능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이 될 수 있따는 미국인의 믿음과 더이상 맞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샌델이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적인 부분은 엘리트의 오만과 승자가 보상을 독식하는 구조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엘리트들의 이면에는 오만한 엘리트에 의해 일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샌델은 능력주의가 능력주의적 학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시궁창에 빠트렸다고 지적합니다. 노동계급의 돈을 잘 버는 전문직업인에 비해 공동선에 기여하지 않기에 사회적 인정과 명망이 별로 따라붙지 않는다며 노동자에 던져주는 쥐꼬리만한 보상도 당연시한다는 거죠.
이처럼 능력주의가 판치는 사회가 잉태한 것은 노동계급의 분노와 극우적 포퓰리즘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뿐만 아니라 유럽사회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샌델은 이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조건의 평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동시에 시민들이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고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 공동선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일정수준의 겸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샌델은 결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개인적으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장 인상깊은 한줄을 꼽으라면 번역자인 함규진 교수께서 쓰신 한국독자를 위한 서문에 있는 문장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 아니면 행운의 산물인가? 나의 노력은 나의 것이지만, 그런 노력은 패배자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재능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운이다. 나의 노력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를 만난것도 내가 시대를 잘 만난 행운의 결과인 것이다."
이 책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를 이끄는 엘리트, 명문대 재학생들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문장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지위가 과연 그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룬 것인지, 행운의 산물인지를 고민해야합니다. 거기서 시작하는 겸손함이 우리사회가 한걸음 진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에 이어 박권일 씨의 한국의 능력주의, 김동춘 교수의 시험능력주의도 읽었으니, 곧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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